전시소개

기획취지

시민모임 서혁수

꽃망울은 긴 겨우내 스스로 여무는 수고로움과 움츠러드는 추위의 고통을 같이 느끼면서도, 봄이 올 때까지 참아내 결국에는 제 몸을 터트립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몸이 채 영글기 전부터 매일 겨울 같은 오십여 년을 보냈던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픈 몸과 뼈저린 기억을 억누르고, 스스로 입을 눌러 닫고서 오랜 시간 참아왔습니다. 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다 어느 날 일본군 위안소 제도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낯선 곳으로 끌려가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함을 겪었습니다. 이후에 그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건너,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다 고향으로도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땅에 숨어들기도 했습니다. 말하지 않은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픈 기억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 이후, 세상 여기저기 숨어 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용기 내 묵혀온 기억을 고통스레 다시 떠올리며, 아물어 버린 입을 힘겹게 열고 증언했습니다. 오랫동안 덧난 상처의 딱지를 걷어내면 생살과 분리되는 고통을 겪듯이, 그들은 몹시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쏟아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평생 본 적 없는 낯선 무대 위의 조명, 카메라, 그리고 청중 가운데서 가슴속 가장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더듬어 하나씩 꺼내는 일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증언자에게 “증명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당사자를 또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까요?

아무도 믿지 못하고 믿을 수 없었던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각자의 삶을 담아냈기에 너무나 다르면서도 결국 똑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일본군이 주도한 위안소 제도로 인해 많은 여성이 인권을 유린당했으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피해 사실을 들은 시민들은 서로 손잡고 피해자와 함께 거리에 나와 국가를 넘어 힘을 합쳤습니다. 이 연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운동으로 이어졌고, 그 움직임은 세상 속에서 잊힌 시간과 무디어진 감각을 일으켜 많은 국가의 젊은 세대가 보고 새롭게 알고 공부하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젠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냐”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힘겹게 생을 살아가는 피해생존자를 다시 바라봅니다. 연 무엇이 충분한지 그들은 아직 그 자리에 고통받으며 별다르지 않은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역사 부정’이란 겨울이 계속되지만 꽃망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이란 새봄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시들어 가는 꽃망울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서 새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특히 이미 세상을 떠난 전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영혼과, 세월과 병마와의 싸움에 힘겨워하는 전세계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며 이 전시회를 바칩니다.